‘어휴, 냄새야. 말을 해, 말아.’
누군가와 대화하다 이런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입에서 풍기는 역한 냄새 때문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입 냄새가 심하다”고 말했다가 상대방의 마음이 상할까 봐 잠깐 숨을 참고 마는 이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건강을 염려한다면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이 낫다. 입 냄새가 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48) 부장은 최근 목 이물감과 구취 때문에 곤혹스럽다. 목이 답답해 습관적으로 헛기침을 하고 자꾸 침을 삼켜 업무에 집중이 안 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치과에서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도 구취가 사라지지 않는 것. 동료 직원들이 코를 막고 고개를 돌릴 지경이다. 가족의 권유로 병원을 찾았는데 구취 주범은 구강질환이 아니라 ‘역류성 식도염’이었다. 연말연시 연이은 술자리에서의 과음과 과식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주범은 후비루와 역류성 식도염
한겨울 구취에 시달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겨울철 발생하기 쉬운 비염과 축농증, 잇따른 회식이 유발한 역류성 식도염이 구취를 일으키기 때문. 구취는 건강 이상뿐 아니라 사회생활과 자신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
보통 만성구취가 생기면 먼저 구강질환을 의심하기 마련. 하지만 구강 문제가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다면 다른 신체질환을 의심해야 한다. 특히 호흡기나 소화기 문제는 목 이물감을 동반한 구취의 주요인이다. 그중 비염과 축농증이 원인인 후비루, 연말연시 잦은 회식에서 비롯된 역류성 식도염이 대표적이다.
후비루는 콧물을 밖으로 내보내는 길에 이상이 생겨 콧물이 목 뒤로 넘어가면서 발생한다. 보통 감기와 함께 오는 비염과 축농증을 비롯해 콧물을 유발하는 비강질환이 선행된다. 차고 건조한 날씨에 코 점막이나 분비물이 말라 코 안 통로를 막아서 생기기도 하고, 간혹 임신이나 호르몬의 변화 등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후비루의 주증상은 목에 이물감이 느껴지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헛기침을 하는 것. 목에 코 분비물이 있으면 이를 분해하기 위해 세균이 작용하는데, 이때 열이 발생하면서 악취가 나는 것이다.
역류성 식도염도 마찬가지다. 식도로 넘어온 음식물이나 위산 때문에 이물감이 느껴지고 목이나 가슴이 쓰리면서 신트림이 나오기도 한다. 역시 이물질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구취가 발생할 수 있다. 역류성 식도염은 잘못된 식습관이 주로 문제가 된다. 특히 연말 송년회 단골메뉴인 술과 고지방, 고열량 음식은 위장 속 내용물이 역류하지 못하게 조여 주는 하부식도괄약근의 압력을 떨어뜨려 조절 기능에 악영향을 미친다.
김대복 혜은당클린한의원 원장이 겨울철 구취의 치료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대복 혜은당클린한의원(옛 혜은당한의원) 원장은 “이 밖에도 기름진 음식, 단 음식 등을 즐기는 식습관 때문에 혈액에 오염된 영양물질이 쌓일 수 있다. 그러면 인슐린을 제대로 수용할 수 없어 당뇨병이 생기기도 하고, 혈류 흐름을 방해해 고혈압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세포의 연료인 혈액이 오염되면 세포가 기형으로 변해 비만세포가 되기도 한다”며 “당뇨병, 고혈압, 비만 등이 있을 때도 구취가 나기 쉬운데, 혈액의 영양물질이 오염되면 냄새가 발생하고 호흡을 통해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양치질로도 사라지지 않는 구취와 목 이물감이 괴로운 이유는 개인적인 고통 외에도 단체 생활에서 난처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집중이 필요한 조용한 사무실이나 교실에서 목이 답답해 습관적으로 킁킁거리거나, 헛기침을 자주 하면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또한 대화할 때 구취로 상대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
상황에 맞는 근본 치료법
따라서 목 이물감을 동반한 구취가 있을 때는 진단을 통해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제때 치료받는 게 중요하다. 문제는 후비루, 역류성 식도염 등은 만성인 경우가 많아 재발이 잦다는 점. 단순히 콧물을 제거하거나 위산을 억제하는 것만으로는 치료가 쉽지 않다. 만약 이런 1차적인 치료로 증상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해당 장기를 강화하는 근본 치료로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한의학에서 후비루 등 호흡기질환은 폐의 약화에 따라 면역기능이 저하돼 생기는 것으로 본다. 이때는 콧물이나 염증을 제거하는 동시에 신궁환 등의 기본약재로 폐기능을 강화하고 체내에 축적된 독성물질을 배출하는 데 중점을 둔다. 역류성 식도염은 위장에 비생리적 체액인 습(濕)이 쌓여 위 기능이 무너져 생기는 질병이므로 몸 상태에 따라 가미치위탕 등으로 위장에 쌓인 습열(濕熱)을 내리고 위 기능을 강화하면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구취가 심할 때는 폐나 위를 강화하는 한약과 함께 구청음을 복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김대복 원장은 “천문동, 비파엽, 석곡, 황금 등으로 만든 구청음은 폐나 위를 보호하면서 구취를 잡는 기능을 한다. 천문동은 신장과 폐에 작용해 진액 생성을 돕는 동시에 장을 윤택하게 한다. 비파엽, 석곡, 황금은 위장에 쌓인 열을 내려 위장문제로 인한 구취를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발을 막으려면 질환에 맞는 기본 약 처방 후 개인 상태에 따라 약을 가감하는 환자별 맞춤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복합질환의 유무나 소화기능, 배변기능, 수면의 양과 질 등을 파악해 각자 처한 상황에 맞는 치료를 해야 구취를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환자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과로를 피하고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을 기르는 것이 좋다. 되도록 자연식품 위주로 섭취하고 인스턴트나 탄산음료를 자제해야 한다.
최영철 주간동아 기자 ftdog@donga.com